1. 소설가 최인호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작가란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바빠 미처 감각하지 못하고 지나갔거나, 감각했더라도 미처 표현하지 못했던 것들을 예민하게 포착해 그것을 글로 섬세하고 구조적으로 조직해내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글을 쓰게한 소재가 무엇인지, 혹은 그 글이 표상하는 상황이 무엇인지를 역으로 생생하게 추적할 수 있게하면서도,한편으로는 보편적인 상황을 참신한 단어의 조합으로 묘사하여 익숙한 일상의 순간을 새로운 호흡으로 바라보게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오수영 작가의 <우리는 서로를 모르고>를 읽으면서, 오랫만에 이 기분을 다시금 느꼈습니다.


2. 벌써 5년 반정도가 지났네요. 신촌의 한 영어 학원에서 잠시 만났던 작가님의 수줍은 듯 겸손한 웃음은 생각보다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그 분 역시 저를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우연히 인스타그램에서 소식을 접하고 구매한 작가님의 전작, <진부한 에세이>를 읽으면서 저는 그렇게 잠시 닿았던 인연, 아주 잠시 만났던 분의 이미지가 이토록 오래도록 남아있던 이유를 알수 있었어요.

고전들과 함께 밤을 지새우며 자기 자신에 대해 탐구하고, 세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글로 끊임없이 표현하고 다듬어온 저자의 글을 읽으며, 저는 세상에 나와 같은 사람이 또 있구나. 라는 일말의 안도감을 받았습니다. 어쩌면 잠시 만났지만 조금은 비슷한 구석이 있어서 기억에 남았던 건 아닐까-하는 저만의 생각도 들었고요.


3. <진부한 에세이>를 읽으며 제가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의 나' '내면의 아이' 그리고 그 아이가 바라보던 기울어진 세상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 기울어짐을 깨달은 자로서 무언가를 실천하지 않고 있는 현재의 내가 느끼는 부끄러움을, 참신하면서도 묵묵하게 표현해서 한동안 잊고 있던 과거의 나의 생각과 감정들을 되살아났었습니다. 그렇게, 전혀 진부하지 않았던 에세이를 읽은 지 1년 후, 반갑게도 작가님의 새 책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전의 책을 읽으며 느꼈던 다른 결의 신기함을 다시 또 느꼈습니다.제가 최근에 계속해서 생각하던 #반성 과 #성찰이라는 키워드가 계속해서 반복해 책에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4. 책을 읽으면서, 저는 자기 스스로에 대해 알기 전에 자기 자신을 배려하는 태도를 갖출것을 이야기하며 자기 형성의 윤리를 강조했던 푸코가 계속해서 떠올랐습니다. 사실, 읽는 내내 매 글마다 여러 철학자들이 거진 수천년동안 말해온 이야기들이 하나씩 매치가 되었습니다.


그러다 문광훈 선생님께서 <한국인문학과 김우창>에서 에세이에 대해 이야기한 것을 읽고, 바로 이 책과 작가님이 떠올랐는데,


'어떻게 타인과 만나는 가운데 자기 삶을 꾸려갈 것인가. 글은 수치와 모욕이 없는 삶을 구성하는데, 옳고 #선한 삶에 대한 감각을 키

우는 데 정녕 쓸모있는 것인가? 이 물음에 예술적으로 대답하는 것은 #전인적인 노력을 요구하고, 여러 자질 - #감수성 과 #사고력#표현력 이외에도 #해석력 과 #관점#유연함과 #탄력성을 동시에 요구한다.'


위 문장을 읽으면서는 작가님이 이러한 능력을 종합적으로 겸비했다는 생각을 했고,


'철학적 논증은 엄밀하면서도 얼마나 따분한 것인가? 감상적 수기를 즉각적으로 호소할 수 있지만, 사안을 얼마나 피상적으로 다루는 것인가? 그래서 우리는 #깊이 있으면서도 #선명 하고, 명쾌한 논리를 지니면서도 #여운 을 허용하는 어떤 의미의 메아리를 갈구한다. 이 점에서 나는 '#에세이'라는 장르에 주목한다. 왜냐하면 에세이는 자유롭게 쓰여진 형식을 지니면서도, 그 내용은, 필자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깊이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감성과 이성을 심미적으로 매개하는 방식이고... 예술 에세이는 감성이 이성화하는 경로를 경험구체적이면서 철학적 명상 아래 기록하는 장르다.'


라는 문장을 보며 이 책이야 말로 여기서 가리키는 에세이의 의의를 포함한 좋은 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4. 결국 글쓰기는 주체의 자기반성적 활동일텐데, 이 책은 작가의 자기 반성적 활동을 글로 명쾌하게 표현하면서 읽는 이까지도 그 반성에 동참하게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자는 언어, 즉 한국어의 아름다움을 여실하게 보여줍니다 수년간 고전과 습작으로 새벽을 채운 작가의 부단한 노력과 글에 대한 애정이 묻어난다고 느꼈습니다.

자연스럽게, 강유원 선생님께서 한국어로 공부하며 한국어로 이해하고 넘어가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어정쩡하게 한국말에 외국 단어를 섞어 사용하는 것은 양쪽 모두 언어에 대한 정합성을 기르지 못하고 국한문혼용체를 사용하는 수준에 그치고 만다던 선생님의 그 말씀은,

이따금 영어단어가 더 뜻을 잘 전달할거라 생각하며, 습관적으로 appreciate와 같은 단어를 한국어에 섞어 가며 말하던 저의 일종의 오만함 혹은 게으름을 부끄럽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그런 나태함의 흔적을 전혀 발견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더 나은 표현을 찾아 단어 하나하나를 곱게 선택한 부지런함과 성실함이 읽힙니다.


5. 책을 덮고 나서, 책의 뒷 표지에 적힌 글에 공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책이야 말로 이 시대의 언어로 쓰여진 철학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철학은 인지과학이 등장하면서 인간의 사유과정과 감각에 대한 논리를 탐구하는 학문이라는 지위를 상실했는지도 모릅니다. 다만 철학이 여전히 철학인 이유는, 앞선 철학자들이 세계를 어떻게 인지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문제의식을 세우고, 또 그것을 촘촘하고 깊이있게, 논리적으로 탐구했는지 배울 수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들이 도달한 답을 바탕으로 우리 삶의 화두를 자신만의 언어로 풀어나가는 방법을 우리가 우리에게 적용해보는 것이죠. 거인의 어깨에 올라가 자신의 세상을 꾸리는 것인데, 여기에서 유의할 점은 지식에 매몰되어서도, 집단 안에서 개인을 잃어서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저자는 책 전반에서 언급합니다. 자신을 약간 예외적인 경우인 듯 겸손하게 말하지만, 사실 우리 모두는 지나친 집단주의에 경도된 우리사회에 지쳐있고, 취향이 존중받는 개인으로 살기를 바랍니다.


6. 글이 길었습니다. 마무리 하자면, 자신을 성찰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탐구하기 어려운 시대에, 작가는 생업에 종사하는 시간과 심미적 사유로 충만한 시간 사이를 오가며, '자신'을 놓지 않고 살아가는 한 사람의 삶의 방식을 보여줍니다. 요약하자면, <우리는 서로를 모르고>는 철학한다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며 당면하는 문제들에 각자의 방식으로 대면하는 과정이라는 것를 성찰과 반성이라는 키워드로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보이는 데 있어서 따듯한 마음과, 언어와 사유의 품격을 겸비한 이 시대의 철학자의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성찰과 반성이라는 키워드 말고도 발견할 수 있는 보석같은 주제의 글들이 많습니다. 이 긴 글을 읽으시는 것보다 더 쉽게 읽으실 수 있고,또 무겁지도 않은 책이니 한 번씩 꼭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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