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11:28-30

-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 무거운 짐이 단순히 내가 가진 걱정과 불안, 현실의 어려움 등이라고 생각했는데, 소망/욕망/욕심만 늘어놓으며 이루게 해달라고 하는 마음. 그런 세속적 물질에 대한 탐욕이 무거운 짐이다. 그것들을 내려놓고 예수의 멍에를 들어라. 더 번영하는 것 아님. 그러나 다른 기준의 예수의 멍에 들고 자유 얻을 것.


* 광야

- 이따금 마주하는 외로움과 고독, 공허함 짊어지고 사는 현대인. 남녀를 만나 채우려고 해도 안됨.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하셨듯, 그런 행동 그만하고 내가 주는 물을 마셔라. 

- 그런 외로움과 고독은 어쩌면 성령이 자연스럽게 우리를 인도해 광야로 보내시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될 것.

- 그 때는 말씀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 거기에 더 머물며 기도하며 예수님의 뜻 알고 따르고자 해야 함. 

- 예수를 매개로 했을 때만 얻을 수 있는 영적 양식. 

- 광야를 보내시는 건 나와 더 가까워지시려고. 타인을 위한 봉사, 헌신 지속되면 부어주실 때가 있다. 하지만 반대로 간절히 부르짖어도 버림받음 느낄 때가 있음. 그런데 그것은 예수도 경험했던 일. 예수께서 "왜 나를 버리십니까"라고 했었다. 하나님과 계속 연결되어 있음. 그걸 믿고 거기서 더 뜻을 찾고자 하는 태도. 기존의 짐 버리고 새로이 하나님의 멍에 지는 시간. 자기만의 십자가 이고 걸어나가는 시간.


* 용서

- 용서란, 예술의 삶 따르는 것, 그분 말슴에 순종하는 것: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는 것은 하늘에서도 메일 것이요, 땅에서 푸는 것은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마18:18

- 하나님의 은혜 없이도 온전하게 타인 용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 

 


오늘 Serena와 이야기하면서, 

그리고 싯처 목사님의 글을 다시 읽으면서, 

내가 열등감과 비교에 빠져 그 상대적 박탈감으로 인해 느낀 부정적 감정을

마르크스의 입을 빌려 기독교를 비난하는 것으로 돌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의 삶이고 각자의 자리일 뿐인데...


기상한 후 머쓱한 마음이 들어, 아침에 모세의 십계명을 다시 찾아보았다. 

No idols / Honor your parents.


그 전에, 플랭크하는 자세를 보고 엄마가 그게 아니라고 했는데 그 말을 듣자마자, 

엄마는 내게 건설적인 충고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그리고 어쨌든 제대로 된 자세를 배운건데 뭐라 하니 순간적으로 짜증이 나서,

나도 강하지는 않지만 엄마가 듣기에 좋지는 않게 짜증을 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후회가 되었다. 

1) 내가 마음이 좁은 상황이라 충고를 충고로 듣지 못하고 나무라는 말로 듣고, 칭찬을 듣지 못했다는 생각에 짜증을 냈다는 생각이 들었고,

2)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대하지 않았고, 또 모든 조언을 겸손하게 받들지 못했다는 부끄러움이 강하게 들었다.


내가 좀더 엄마아빠를 공경하고, 내 자신에게 자신이 있다면

그런 말에 "아 그래? 그럼 어떻게 하면 되거 같아?"라고 더 유하게 답할 수 있었을텐데.


수십년간 보아온 엄마의 의중은, 그 말을 함으로써 자신이 더 알고 있다는 식의 자부심을 느끼고자 한다고 

머리 속에서 자동으로 연산이 되었기에, 그런 까칠한 반응이 나갔던 것 같다.


다른 사람이 그랬다면 그러지 않았을 것 같다고 할까.

모쪼록 나라도 더 좋은 방향으로 먼저 나아가는 모습을 보이고,

그렇게 해서 궁극적으로 우리도 그리스도교인으로서 사랑을 나누며 더불어사는 삶을 살아가야지.


그렇게 부모님을 공경하고 honor your parents하라는 십계명의 말씀에 나를 비추어보았고,

이는 곧 어제 밤, D선생님에게 종교는 정말 인민의 아편같고, 잘사는 사람들의 "예배 드리고 브런치<3"와 같이

은근히 자신의 교회다님/신앙심을 나타내는 자기과시 같아 보인다고 말했다.

왜 현실을 안바꾸고 너희가 세상을 보는 시각을 바꾸라고 하냐고 말이다.


그런데, 그건 정말 좁은 시선이고 일방적이라는 걸 오늘 serena와 대화하며 깨달았다.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심으로써 우리에게 주신 자유함을 통해 나타나고,

그 뜻을 받들어 사는 사람들은, 적어도 더불어 사는 자본주의를 이 땅에 구현하고 있는 S와 같은 사람들은,

진실로 사회를 변혁시키고 있었다.


세레나와의 만남 전에 그런 생각을 들게 하신것도, 다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레나 만나고 영오빠 이야기도 정리하는 글을 적은 후, 내 미래와 세레나 사업의 접점, 그리고 그녀가 내게 준 조언을 정리하고 자야겠다.

김선국 목사님께서 선물해주신 책.  내가 참 존경하고 좋아하는 분. 이런 분과 연이 닿게 해주신 하나님께는 매 순간 매 초 감사할 수 밖에 없다.

목사님과 세현이와의 만남을 통해, 의식적으로 잘 사용할 줄 모르는 근육을 조금씩 사용할 줄 알아가는 것처럼,

내 삶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과 함께 나아가는 삶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것 같다. 







* 현재에 충실할 것을 엄격하게 지키시기 때문에, 그만큼 미래에 대한 우리의 선택에 대해 관대한 하나님.


* 모든 것이 내게 가능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오, 모든 것이 내게 가능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메이지 아니하리라. 고린도전서 6:12


* 소명, 인간의 필요와 도덕적 기준 및 전체적 시각을 고려하게 함. 


 - 가장 깊은 동기: 내면을 살펴 어떤 일에 동기를 느끼는 지 스스로를 알아야 함. 내 흥미를 끌고 힘을 나게 하는 것. 

 - 내가 하는 일이 단순히 내가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재능이었으면 좋겠다.

 - 소명의 발견에 도움이 되는 요인 중 하나는 공동체에의 참여. 소명이 공동체와 동떨어져 발견되는 경우는 드물다.


* 일과를 마친 후, 하루를 하나님의 임재에 비추어 되돌아보며, 평범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뜻 묵상

 - 가장 바쁘고 산만한 때 하나님은 어떻게 당신의 임재를 알려주고 계신가?

 - 악은 건강한 우선순위의 왜곡을 통해 창궐한다. 우리가 무절제한 욕심으로 그것들을 찾을 때 죄는 바로 그것들을 통해 들어옴. 

 - 선한 우선순위는 삶의 경로 정해주고, 그 길 가는 동안 선택의 지침이 되어줄 것. 

 - 한 사람의 삶은 참으로 많은 사람의 삶을 만지는 것. 그 사람이 없다면 엄청난 빈자리 남을 것. 실망 때문에, 삶을 선하게 만들기로 선택하는 것.

 - 자신의 삶이 훨씬 큰 이야기 일부가 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중요한 의미 주고, 자신에게 영원한 결과 가져온다는 걸 못 봄. 그저 자신이 아는 하나님꼐 반응할 뿐.


* 더불어 사는 삶

 - 그리스도의 믿음 안에서 하나님, 우리에게 엄청난 자유 주심. 그분의 나라와 의 먼저 구한다면, 미래에 어떤 선택 내리든 그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됨. 그러나, 오직 하나의 길만이 그분의 뜻이 됨. 지나고 난 후 회고할 때, 우리는 길이 하나뿐이었음을 하나님의 시각에서 볼 수 있음.

 - 하나님의 인도와 동행 믿으며 선하게 살고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는 것.

 - 생이 아무리 비참하다 해도 하나님은 이야기를 영광스럽게 끝내실 것. '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사람이란 자신의 고난을 견딤으로써, 자신의 내면을 향함으로써, 자신의 영혼을 발견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알게 된다고 말이다. 고통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슴도 하셨다. 고통을 알 때 우리의 자만심과 교만과 타인에 대한 무관심이 깨어지는 법이다. 고통은 우리가 얼마나 약하고 보잘것없는 존재이며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얼마나 절실히 의지해야 하는지 알게 해준다. "

* I Believe in you, God.

 - 나는 나보다 훨씬 큰 분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모든 자기 연민과 분노의 기억을 씻어내고, 결심을 지키게 해주시고, 이기적인 자기 사랑, 자기의지도 죽여 삶의 질서를 유지하게 해주신다.

 - 언젠가 네가 네 잘못을 마음깊이 통렬하게 깨닫고 나를 비롯한 모든 이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은 날이 오기를 기도한다.

 - 과거는 현재의 우리 모습을 만들었다.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지금 이 순간뿐이라는 사실. 

 - 나는 그리스도인의 열정으로 위장했던 교만과 비판적 태도를 후회한다. 아주 작은 경솔한 행위도 우리를 갉아먹기 시작해 결국 후회에 빠뜨릴 수 있다.


* 원한

 - 원한을 품은 사람들은 자기 나름 논리가 있다. 피해자의 논리. 자기가 당한 상처에 주의 끄는데 민첩. 한 사람의 무심한 행위가 끔찍한 결과 초래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나, 사회 전체는 자신을 피해자로 만드는 기술이 탁월하다. 그러나, 그 피해사실이 옳다고해서 그 자체로 행복해지는 건 아니다.

 - 나는 끝내 원한을 품지 않은 것에 깊이 감사한다. 하나님이 은혜로 나를 그 위험에서 건져주셨다. 내가 그 악에서 나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원한이 내 자식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 몸안에 그 독소를 들여놓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 아무리 복수극을 연습해도 고통을 유발한 그 사건은 결코 되돌릴 수 없다. 후회와 원한과 복수는 우리를 파멸로 몰아갈 뿐이다. 우리는 자신의 어두운 영혼 안에 포로로 갇혀 자신의 강박적인 생각에 질식하고 말 것이다. 

- 인간은 잃어버린 시간과 그 때문에 당한 피해로 끝없이 슬퍼할 수 있다. 자신의 잃어버린 자아로 인해. 그러나 고대의 지혜는 그렇게 계속 슬퍼하기만 하는 것이 좋지 않다고 말한다. 옛 사람들은 알았다. 우리에게 들려줄 진리가 있었다. 아무리 마음 아파해도 우리는 결국 처음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 우리는 계속 전진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상처를 그대로 지고 가야한다. 

- 그렇게 과거의 깊은 상처와 관계없이 어쨌든, 앞으로 나아가야한다. 이미 일어난 일은 바꿀 수 없다. 

- 그러나,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하나 있다. 과거를 구속하시는 하나님을 믿을 수 있다. 


* 구속

- 하나님이 이미 벌어진 이릥 악을 사용하여 선을 이루시는 것 의미. 

- 친절하고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된 것은 과거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가 아니라 과거의 어려움 떄문, 이다. 

- 은혜의 사역. 용서 받아들이고 타인을 용서해야하며, 하나님이 합력하여 선 이루시도록 기다려야 함. 

- 남을 비난하는데는 빠르고, 잘못 인정하는 데는 느린 나와 같은 인간.  하나님 용서 받아들이고 자신 용서 해야. 그 실수가 삶 지배할때까지 반복해서 테이프 돌리지 마라.

- 가해자가 잘못 책임 지든 그렇지 않든, 무관심하고 계쏙 잘못을 반복하든말든, 사라지든말든, 하나님의 은혜는 놀라운 일을 이루실 수 있다. 은혜는 영혼을 치유하고 성품을 개발하며 평화를 창출한다. 

- 용서는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살게 해준다. 


* 영적 감각 훈련하여 거룩한 지금을 끌어안으며 현순간의 경이를 누리는 것.


* 우리의 삶이라는 이야기는 생각보다 들쭉날쭉하면서도 놀라운 것. 우리 앞에는 하나님의 뜻 행할 수 있는 선한 길 많다. 모든 길 하나님의 뜻일수 있지만 그 중 하나만이 하나님의 뜻. 바로 우리가 선택하는 길. 하나님은 그 선택을 복 주시고 구속하신다. 얼마든지 확신해도 좋다. 하나님은 선하시며 우리를 자신의 소유로 지으셨기 때문이다. 

- 결국 우리는 하나의 길, 오직 하나의 뜻, 하나의 목적만이 있었음을 알게 될 것. 바로 우리가 선택하고 우리가 걸어온 길. 그것이 곧 하나님이 성취하신 계획이요, 당신의 영광과 우리의 유익을 위해 이루신 큰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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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음한 여자 이야기

: 구약에 적혀있는 계육에 대한 복종 vs 눈 앞의 여자: <더불어 사는 자본주의>

: 남자는 어디가고 여자만? - 생계를 위한 간음 : <그림으로 읽는 성경이야기>

: 집단적 폭력에서 벗어나 개인의 죄성 반성하게 한 예수.: <인간의 위대한 질문>



* 비난이나 판결이 아닌 어조로, 그는 이러한 희망의 말을 덧붙였다.

"나는 너를 책망하지 않는다.", "가라, 그리고 더 이상 죄를 짓지 마라/"

: 자리를 모면할 수 있다면, 다시는 나쁜 짓 안하겠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었을 것. 

 예수는 그녀가 이제까지 살아온 삶 청산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안다. 그래서 예수가 이 말을 했을 때, 예수는 그녀가 마음속으로 다짐한 것을 꼭 성취할 것이라는 믿음과 희망을 심어준 것. 

: 내가 바뀔 수 있을까, 이 악몽과 끝없는 굴레 벗어날 수 있을까. 정말 내게 희망이 있을까. 라는 회의와 자포자기 심정에 대해 예수는, 물론 너는 할 수 있다. 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 그녀는 용서받았고 다시 일어설 수 잇을 것이다. 이제 그녀는 예수의 축복을 받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은 훌륭한 스승이 갖추어야 할 최상의 덕목이다. 


이영자가 말한 사랑이 무엇인 지 마음으로 알 듯 하다.



 우리들에게는 대부분 부모가 첫번째 스승이다. 구약의 출애굽기에서 모세는, 우리는 우리의 자식들뿐만 아니라 4대 손자에게까지도 우리의 사랑을 보여줄 수 잇다고 상기시킵니다. 우리가 우리의 아들딸을 사랑하고, 그들을 우리의 사랑이 가득한 본보기를 통하여 가르칠 때 그들 또한 그들의 아들딸을 사랑하게 될 겁니다.  더불자, p.235


 하나님, 저에게 직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있을 곳과 있지 않아야 할 곳을 직관적으로 깨달을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와 안맞는 이들을 구분하고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제가 당신의 뜻을 더 자신있게 펴고 제가 제가 될 수 있는 자리로 인도해주심에 감사합니다. 제가 더 제 뜻을 펼침으로써, 당신을 찬양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가는 삶을 살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어느때보다도 제가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고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끼고, 그 한 사람과 관련된 사람들은 모두 대단한 사람들이기에 제가 작아지는 마음이 들지 않아서 감사합니다. 그 사람을 미워하고, 틀렸다고 생각하고, 그리워하고, 그 어떤 형태의 미련을 느끼지 않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새로운 사람들과 기존 사람들의 연락으로 빈약하던 제 하루하루를 그 사람을 그리워 할 일 없도록 채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를 높이 평가하고 제가 저 스스로를 인정하고 빛나는 오늘의 제가 될 수 있게 해주는,

사람 한 명 한 명의 가치와 존엄성을 존중하는 멋진 부부를 제 삶의 동행자로 인연을 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모든 소중한 인연들은 제가 조금의 적극성을 발휘했을 때, 당신께서 저를 더 큰 바다로 나가도록 바람불어주셨음을 압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당신은 바라보고 당신의 뜻을 구하는 저는

그 어느 때 보다도 당신이 영광받기를 바라고, 제가 알 지 못하는 큰 세계가 존재함을, 의지와 의미의 세계가 당신의 세계 안에 존재함을

막연하게 알아가고 있다고 느낍니다. 


제 삶이 더 나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마다,

어제와 한달전, 일년전, 오년전, 십년 전의 저와는 비할 수 없을 만큼 감사한 사람들로 둘러쌓여있음을 깨달을 때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 있음을, 결국은 혼자서 무소의 뿔처럼 나아가는 삶이라는 것을 느낄 때 마다,

제 옆에 당신만은 꼭 자리하실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아빠의 in my dream 기타소리를 들으며, 아빠가 왜 갑자기 졸리지, 10분만 자야겠다고 말할때,

엄마아빠가 아침에 농장을 다녀왔다고 하실 때,

그걸 누워서 듣는 순간이, 어제 다인이가 춤추는 걸 부부가 보며 흐뭇했다는 그 행복과도 같은 일상적인,

미처 느끼지 못할 수도 있는 은혜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더 나아지는 가정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의 사랑 안에서 저희 식구 모두 살아갈 수 있도록 하소서.

당신만 의지하고, 세현이가 느꼈던 것과 같은 가슴이 도려지는 아픔과 부러움, 

당신의 뜻을 함께 구하고 실천하고자 하는 식구들을 제가 이제 인도할 수 있도록 당신께서 인도하여주시옵소서.


제가 잘난 것 없고, 배우고, 겸손하고 늘 숙이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잠시 오아시스처럼 제가 가진 것들에 감사하고 제가 좋은 위치에 있음을 깨닫되,

그 꿀을 탐한 후 다시 고난과 노력과 수련의 길으로 전진할 수 있게 도와주시옵소서.


당신의 품으로 끌어주시고, 전혀 당신을 알지 못하던 저를, 

이렇게 당신의 뜻과 의를 구하는 사람으로 이 자리까지 이끌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의 사랑이 저에게 넘침을 깨닫게 해주셔서, 저를 사랑해주셔서, 제가 스스로 충만한 사람임을

매일같이 확인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동안 혼자 수만 번 넘어질 때 마다, 당신을 알지 못하고 슬퍼하는 저를 당신이 얼마나 안타까워하셨을지

그 어버이의 마음을 감히 짐작할 수 없습니다. 이 자리에 오도록 하기 위해, 정처없이 고통스러워하며 헤멘

지난 수많은 밤들을 저에게 주셨음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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